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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자동차 등 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 교도들
Nov 22, 2008 08:11 AM 성경 에서

 
 
















아미쉬는 재세례파의 후예들
김재일

문명을 거부한 아미쉬 교도들

아미쉬 사람들이 자동차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사실 자동차와 전기가 없이는 현대 문명을 꿈꿀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현대 환경 위기의 주범이 바로 전기와 자동차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라마 불교의 본산인 랏사에도 전기를 사용하고 자동차를 타기도 하는데, 절대 오지의 열악한 환경에 의해서 그것을 어쩔 수 사용할 수 없는 곳이 아닌 바로 그러한 문명의 한 복판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산다는 것에 사람들은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미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생태주의자들 환경운동가들입니다. 물론 원룸 스쿨에서 8학년까지만 교육을 받는 아미쉬 특유의 교육관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주로 아미쉬 하면 '자동차와 전기 없이 사는 사람들'을 연상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아미쉬에 관한 책들이 3권정도 있는데, 아미쉬의 이러한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미쉬들의 ‘치열한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아미쉬는 자기들이 전혀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사는 삶이란 한계가 있고, 지속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붕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아미쉬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화폐 경제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 운동이나 유기농 운동에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 © 황규학

그것은 백 년 전이나 오십 년 전의 농촌에 살던 우리 농민들이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미쉬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신앙 때문이고, 그것도 자발적 선택을 한 신앙에 기초한 삶의 규율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현대 문명이 주는 욕구를 억제하고, 현대 문명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산상수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아미쉬는 근본주의자들

다시 말해서 아미쉬 사람들은 가장 근본주의적으로 성서를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에도 글을 썼지만, 과학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저와는 달리 아미쉬 사람들이 원룸 스쿨에서 8학년까지만 하는 자기들만의 교육을 고집하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도 있습니다. -

그리고 믿는 것과 사는 것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에, 가장 복된 삶이기에 치열함이 아니라,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라는 책에는 한 아미쉬가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문명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 때문

프레다 벤더는 팔꿈치에 기댄 채 그녀의 병실을 쭉 둘러보았다. 다른 산모는 화이트 부인뿐이었다. 간호원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들어왔기에 그녀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두 번째 간호원이 화이트 부인의 아기를 데리고 왔다.

오, 불쌍한 아기! 저 아이가 맞게 될 세상은 어떤 것일까? 텔레비전에서는 음란한 영화들이 나오는 세상, 담배와 술이 판치는 세상, 기계와 스위치와 콘크리트 길의 세상에서 어떻게 자랄 것인가? 저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인물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프레다는 갑자기 달리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 부인 역시 나의 아기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진 않을까? 오, 불쌍한 아기! 너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운명을 타고났구나. 네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곤 그저 평범한 농부가 되는 것 뿐. 항상 손발이 힘들게 일하고,

평생 땀을 흘리며, 자동차나 텔레비전 같은 쾌락과는 멀어져,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하고, 대성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은 아예 갖지도 못할 저 불쌍한 녀석…

두 아기가 서로 다른 환경에 태어났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화이트 부인의 아기는 멋진 외모와 두뇌, 돈과 명성, 쾌락에 가치를 두는 세상에 태어났고, 벤더의 아기는 원만한 성격과 양심, 도덕, 그리고 다른 이들의 위에 서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세상에 태어났다."

이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미쉬들은 억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고도 당연하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현대 문명의 한 복판에서 그러한 삶을 살아갈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장로교 목사인 제가 그들을 말하는 것이 엄청난 모순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종교개혁 당시에 종교개혁가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고 했던 재세례파의 후예들입니다.

재세례파 중에서도 아미쉬들은 주로 스위스 출신들이 중심이었기에, 칼빈과 쯔빙글리의 후예인 장로교 목사로서는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교와 구교를 떠나서 신교 내의 교파와 국적을 떠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기에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종교개혁의 핵심적 가치인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인용한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습니다.

아미쉬는 재세례파의 후손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이다! 이 구절은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구별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문제는 오직 하나다. 만일 우리가 순교자의 정신을 잃어버린 채 고난으로부터 몸을 사린다면, 그리고 자기부정, 희생, 금욕과 절제라는 덕목을 회피한다면 순교자들은 더 이상 우리 조상이 아니며, 우리도 그들의 후손이나 그 무엇도 아니다.

만일 우리가 편리, 쾌락, 사치, 여가 등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정신을 즐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속 통치자(요한복음 12장 31절-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의 후손일 뿐이다.

만일 그러고도 순교자들을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짓과 다름없는 일이다. 진실은 단순하다. 우리가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들의 후손일 수 없다."

아미쉬, 인격적 교제가 중심

이와 같이 아미쉬들이 정부의 사회보장을 거부하는 것도 교회의 본질이 초대교회와 같이 삶을 같이 나누는 것이기에 그것을 정부에 양도할 수 없다는 신앙 때문이고, 자동차를 거부하는 것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동차 문명이 교회의 본질인 자발적 공동체적인 삶을 깨뜨릴 우려가 아주 많기 때문이며, 전화기를 전화 부스에서만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특히 공동체 식구들 간의 만남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인격적 교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카트리나와 같은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러 봉사 활동을 갈 때는 당연히 차를(대중 교통) 탑니다. 그리고 아주 급한 용무일 때는 전화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중앙집중식 전기를 거부할 뿐이지, 필요에 따라 하이브리드 전기를 자가 발전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병폐는 믿는 것과 사는 것이 괴리, 고백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틀린 삶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을 진리로 알고 살기 보다는, 그리고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이 가신 길, 가라는 길을 따라 걷기보다는 이 세상의 가치와 물질 그리고 그 물질 문명이 가르치는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은 단지 이 길을 잘 가라고 나에게 복을 주는 그런 금송아지를 믿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축복과 관련된 책은 베스트셀러

그러기에 하나님에 순종하는 삶과 기도보다는 <잘되는 나> <긍정의 힘> <왕의 기도> <야베스의 축복>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삼박자 축복인지, 오박자 축복이 횡행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저는 아미쉬 사람들이,

그들이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형제 자매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아는 데까지 소개를 하고 그들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미쉬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문명에 대한 거부와 증오에 기초한 자기-의를 강조하는 생태주의적 환경 운동을 넘어서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천은 오히려 이 세상을 거부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삶과 운동에 모든 가치를 두는 삶이 아니라, 두 왕국 사상에 기초해 영원한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삶-산상 수훈의 말씀과 같은 삶을 사는 삶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가 살아온 삶, 운동, 특히 생협 운동과 환경 운동은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저는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기독교 환경 운동과 생명 운동을 비롯해 기독교 대안 운동들도 이 세상의 이데올로기나 어정쩡한 혼합주의적 영성이 아닌 복음적 영성과 말씀에 더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곳 연평도로 유배를 와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게, 그리고 아미쉬에게 배우는 주님의 길입니다.
초록색 배경은 하나님 나라의 계절 대표색깔 입니다

Jay Johnston,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