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
Nashville TN USA Sung Shin Episcopal Church Nashville TN USA Sung Shin Episcopal Church Nashville TN USA Sung Shin Episcopal Church Nashville TN USA Sung Shin Episcopal Church

내쉬빌 한인 성신 교회

5325 Nolensville Pike
Nashville, Tennessee USA
37211
+1 (615) 333-9979

문신규 목사

카테고리 목록

이민 안내 보기
건강 안내 보기
진학 안내 보기
간증 보기
기타 보기
찬양 보기
성경 보기
정운찬 총리(남포교회) 스코필드 박사는 나의 정신적 아버지..
Sep 8, 2009 09:09 AM 성경 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로마서 1장 18절 말씀을 가장 애송"
김철영

경기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성경반을 만들어 활동했고, 유신시절인 1978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기독학생회 지도교수로 활동했던 정운찬 총리 후보(남포교회, 전 서울대 총장)는 로마서 1장 16절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고 그의 저서 <가슴으로 생각하라>에서 밝혔다.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 뉴스파워

정 총리후보자는 “스코필드 박사님의 제안에 따라 고등학교 때부터 성경반을 만들어 활동했다.”며 “내가 특히 좋아한 구절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성경 말씀을 영어로 외우다 보니 종교 활동과 정신수양과 어학공부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거야 말로 일거삼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말씀은 특히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없는 미국에서 외로움이 사무칠 때, 서울대 총장이 된 뒤 반대의견에 부딪혔을 때, 무한한 용기와 격려가 돼 주었다.”고 고백했다. 정 후보자는 로마서 1장 16절 말씀 외에도 마태복음 산산수훈의 팔복인 5장 1절부터 12절까지도 자주 암송하는 말씀이라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내가 스코필드 박사님을 기쁘게 해 드린 것은, 아마 당신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성경을 외워 가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가 유일했을 것. 그분은 한 자로 틀리지 않고 암송하면 무척 대견해 하며, 내가 정말 자신의 핏줄이나 되는 양 즐거워하셨다.”고 회상했다.

정 후보자가 정신적 아버지로 섬기고 있는 스코필드 박사는 캐나다 온타리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와 교수 생활을 하던 중 고종의 어의를 역임한 올리버 에이비슨 세브란스 의학교 교장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세균학을 가르쳐 달라는 편지를 받고, 1916년 한국에 와서 교육과 선교활동을 했던 인물로 우리나라의 광복과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정 후보자가 중학교 2학년 때 “국회의원의 되겠다.”고 하자 “정치권은 본래 깨끗한 곳이 못되네. 운찬이는 그런 곳에 가지 말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정 후보자는 “스코필드 박사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현실 정치에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분이다. 그래서 아마 한국의 정치현실에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또 “스코필드 박사님은 왕성한 건설적 비판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국가가 어지울 대는 몸을 던져셔 그것을 구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셨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고 했다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 후보자는 “진흙탕에 들어가 연꽃을 피우는 것이 정치라는 데, 우리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애국은 무엇일까? 나라가 이처럼 어려우니 내 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제시한 물음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정 후보자는 “하지만 나의 진심은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왜곡되었고, 정치 현실은 평생 지켜온 내 나름대로의 삶의 원칙들을 깨뜨릴 것을 요구했다.”며 “고뇌 끝에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즉 경제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란 본본을 지키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밝혔다.



1960년 4월, 중학생이 된 정 내정자는 부친의 사망으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다.

학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그를 친구 아버지가 당시 서울대 교수로 있던 스코필드 선교사에게 소개했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양아들로 삼아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정 내정자는 자신의 글에서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있던 그의 숙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나에게 친아버지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1889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스코필드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처음 한국땅을 밟은 뒤 3·1운동을 비롯한 한민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선교사였다.

선교와 장학 사업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면서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을 돌보고 제암리 학살 사건을 해외에 알렸다.

사람들은 그를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번째 민족대표'라고 불렀고,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까지 주었다.

일제에 의해 추방됐던 그는 58년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하며 성경반을 인도했고, 이승만 정권의 3선개헌을 반대해 탄압받기도 했다.

70년 그가 사망하자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 내정자는 "대학로를 함께 산책할 때면 늘 '약자에겐 비둘기같이 자애롭고, 강자에겐 호랑이같이 엄격하라'고 강조했다"며 "60년대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을 개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과에 진학했다"고 소개했다.

정 내정자가 대학 시절 CCC에서 활동하고, 소외계층을 돌봐야 하는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는 케인스학파의 이론을 공부했으며, 서울대 총장 시절 지역균형 선발 제도를 도입한 것도 스코필드 선교사가 남긴 이 같은 신앙유산 때문이었다.

서울 잠실동 남포교회(박영선 목사) 안수집사인 정 내정자는 "인생의 고비마다 스코필드 선교사를 생각하며 나를 채찍질한다"며 "더 부지런하게, 더 정직하게, 더 정의롭게 사랑하며 살라고 오늘도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그를 회상했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내가 도와주던 소년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초록색 배경은 하나님 나라의 계절 대표색깔 입니다

Jay Johnston,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