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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기원 - 4 (일본 왕실의 기원)
Jul 19, 2008 08:07 PM 기타 에서

D. 일본 왕실의 기원

일본 왕실은 본래 가야와 백제의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왕조입니다.
원주민에 비해 높은 문명을 소유한 이들은 일본에서 존경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왕실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추앙 받은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정부가 권력 강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일본 왕실을 신격화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목차

1. 현재 일본왕실은 백제인의 후손

2. 근대권력 ‘천황폐하’를 만들다

3. 일본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풍속
 
1. 현재 일본왕실은 백제인의 후손

 백제가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군사에게 멸망시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일본에 있던 그의 누님인 제37대 '제명(齊明, 사이메이)일왕'에게 구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중에 제명일왕이 죽자, 제명일왕의 조카이면서 일찍이 왜로 와 있던 의자왕의 아들인 중대형(中大兄, 나카노오에)이 이끄는 구원군은 나ㆍ당연합군에 대항하지만 서기 663년 금강(錦江)하구로 추정되는 곳(일본 문헌에는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대패했습니다. 

서기 663년 최후의 거점인 주유성(州柔城 또는 周留城)이 함락되자, 일본열도에서는 "이제 주유성을 잃었구나.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선조들의 묘소에도 이제 다시 못가게 되었구나"라는 비통의 노래가 유행했다고《일본서기》(663년 천지(天智)2년 조(條))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열도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또 한번의 소용돌이를 칩니다. 백제의 유민들이 대거 일본열도로 망명해 들어오자 일본열도의 백제계는 다시 뭉치게 됩니다. 백제 재건의 꿈이 무너지자 중대형은 나ㆍ당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해 일본 각지에서 산성(山城)을 서둘러 쌓는데 전력투구하였습니다.

산성쌓기는 66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북규슈 후쿠오카현(福岡縣)에 태재부(太宰府)를 건립하고, 그 주변에 백제식 토성(土城)을 쌓아 신라군이 공격해 올 경우 수공(水攻)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城)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는 높이 14m, 길이 1.2km, 기저부의 폭이 80m나 되었습니다. 뒷산에는 백제의 망명세력의 지도하에 백제산성을 모방하여 축성한 성이 8km에 걸쳐 토담과 석벽으로 산의 정상부를 두르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667년에는 대마도의 하도(下島, 시모섬)에도 축조했습니다. 이 대마도 산성이 유명한 금전성(金田城, 가네다노키)으로 러ㆍ일전쟁 때와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대포 등을 놓고 요새로 삼았습니다. 7세기 후반에 쌓은 이 산성이 20세기 실전에 쓰일 정도로 견고하게 잘 쌓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 당시 백제인의 높은 건축기술 수준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제38대 천지(天智)일왕이 된 중대형(中大兄, 나카노오에)은 668년에 왕으로 정식 즉위하고, 백제계 중심의 왕권을 강화합니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혈통인 중대형이「천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키는데 '일본(日本)'이란 국호는 서기 670년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제40대 일왕이 된 천무(天武)는 도읍을 다시 아스카(飛鳥)로 옮겨 이른바 왕족과 일반 호족의 신분을 명확히 하고 일왕 중심으로 씨성제(氏姓制)를 재편성하고, 193개의 성씨(姓氏)를 하사하여 지배계층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천무일왕이 죽자 그의 부인이 왕이 된다. 제41대 지통(持統)일왕은 이름 그대로 전통을 지킨다는 뜻에서 일왕의 이름을 지통이라 했고, 백제계 중심의 호적을 재편성하고, 백제계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2. 근대권력 ‘천황폐하’를 만들다 
 
1872년에 찍은 위 왼쪽 사진은 공식 궁정복 소쿠타이 차림에 수염이 없는 군주 메이지의 앳된 얼굴이다. 반면 바로 그 이듬해에 찍은 위 오른쪽 사진에서는 몸에 딱 맞는 서양식 군복을 입고 머리는 짧게 잘라 가르마를 탔으며 수염을 길렀다. 친정을 펼치기에 어울리는 적극적이고 남성화한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왼쪽 그림에서 군기를 든 기마부대가 지나가고 눈앞에는 이제 막 화려한 서양식 궁정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아낙부터 멋들어진 실크햇을 쓴 서구풍 신사까지,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의 눈길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맨 앞의 노인들은 절로 엎드려 신민의 예를 표하고 있다. 

책의 표지는 1906년 러-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일본 왕(천황)의 개선관병식을 그리고 있는 석판화다. 지금 봐도 ‘모던’해 보이는 이 표지는 책의 내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차에 탄 왕의 얼굴은 길가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 때문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 앞좌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종장의 모습을 통해 이 권력자의 위치와 권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군중과 수행원들이 권력의 소재를 드러내 보여도 바라보는 백성들은 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세일계의 혈통을 이어왔다는 일본의 왕은 아직도 반신반인의 존재다. 인간을 초월하므로 그에게는 성(姓)도 없다. 이러한 왕의 관념적 이미지는 너무나 강해서 주변국인 우리조차 그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다. 그러나 그가 지금 같은 존재가 된 것은 불과 일백수십년 전의 일이다. 막부 통치를 끝내고 근대 제국주의 시대를 연 일본의 정치엘리트들이 새로운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허울뿐이었던 존재를 부각시키기 전까지, 평범한 일본 민중들은 왕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결국 이는 근대에 ‘발명’된 시스템인 것이다. 

천황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책 표지 그림은 그 본질을 명쾌하게 드러내 보인다. 천황이란 결국 일종의 ‘국가적 미장센’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이런 관점에서 메이지와 함께 개선관병식 행진과 같은 다양한 ‘패전트’ 곧 국가의례 또는 공식의례를 통해 일본 근대 권력의 창출과정을 문화사적으로 들여다본다. 지은이 다카시 후지타니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으로 샌디에이고대학 역사과 교수로 있는 일본 연구가다. 

후지타니는 메이지가 당시 지배층들에 의해 철저하게 국가 패전트로 활용됐다고 분석한다. 이를 만들어낸 자들은 왕을 이용해 국민들을 근대화 물결에 동참시킨 동시에 그들 역시 왕의 권위에 절대 복종한 ‘확신범’들이었다.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 이와쿠라 도모미 등이 바로 그 주역들이다. 이들은 왕을 신비하면서도 가시적이고, 초월적이면서도 관여하고, 신적이면서도 인간적이며, 모든 인간사에서 면제되면서도 국가의 모든 성취를 책임지는 이원적 존재로 만들었다. 극적인 국가의례가 논리적으로 지탱하기 힘든 이원성을 현실화했다. 

지은이는 메이지 정부가 많은 기억 못지않게 수많은 망각, 곧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낸 기원과 일본 국민의 근대성이라는 패권적 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경험에 대한 망각까지 함께 생산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일본의 근대와 ‘천황제’를 근원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전통인가” 일본인 모두에게 국가적 표상의 오만방자함을, 즉 국가적 표상의 정치를 문제 삼도록 촉구하려는 질문이다. 
 
3 일본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풍속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백제와 가야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 왕실과 풍습에서는
하나님을 믿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앗시라아와 바빌론에게서 멸망할 때 포로로 잡혀 갔다가 흩어졌던 이스라엘의 유민도 
해상 또는 육로로 일본으로 유입되 이스라엘의 풍속이 일본에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본에 있는 기독교인이 이에 관해 연구한 글을 번역하였습니다.
 
a) 일본의 한 축제에서 발견되는 이삭의 이야기

일본 나가노현, "스와-타이샤" 라는 큰 신도(神道)의 사원이 있다. (신도는 일본 고유의 전통적 종교이다.) 스와-타이샤에서는 매년 4 월 15 일 온토사이 축제가열린다. (음력을 사용하던 당시에는 양력 3 - 4 월 경.) 축제는 성경의 창세기 22 장에 나오는 이삭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제로 드리려고 하는 장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온토사이 축제는 스와-타이샤의 가장 중요한 축제이다.
 
The "Suwa-Taisha" shrine 스와-타이샤 신사
  
스와-타이샤 뒤편에는 모리야산(- 山)이 있다. 스와 지방 사람들은 모리야산의 신을 숭배하기 위해 모리야의 사원을 건축함. 축제에서 한 소년이 대나무 자리 위에서 나무로 된 기둥에 묶여진다. 신도의 사제는 칼을 준비하여 소년에게 다가와 나무 기둥의 윗부분을 친다. 그 때 전령(다른 사제)이 와서 소년이 풀려난다.
 
온토사이 축제에서 사용되는 단검과 칼
  
축제에서는 동물 희생이 바쳐진다. 75 마리의 사슴. 이들 중에는 귀가 갈라진 사슴이 있다고 믿어진다. 이 사슴은 신이 직접 준비한 사슴으로 여겨진다. 이삭이 풀려난 후에 대신 희생제물이 된 수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임. 이삭을 대신한 수양은 수풀에 걸려서 잡혔으므로 귀가 찢겨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옛날 일본에는 양이 없었으므로 사슴으로 대체되었던 것이 아닐까. 심지어 옛날에도 사람들은 이 사슴희생제를 기이히 여겼다. 왜냐하면 동물 희생제는 일본의 전통적 신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친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사마리아의 게리짐산(山)에서 열리는 유월절 행사를 참관하였다. 그가 사마리아인 사제에게 몇 마리의 양이 제물로 바쳐지냐고 물었다. 과거에는 75 마리의 양이 바쳐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귀가 찢어진 사슴
  
사람들은 이 축제를 "미사쿠치-신(Misakuchi-god)"의 축제로 부른다. "미사쿠치(Misakuchi)"는 "mi-isaku-chi." 가 변형. "미(Mi)" 는 "크다는(great)" 것을 뜻한다. "이사쿠(isaku)"는 이삭(Isaac, Yitzhak-히)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 치(chi)는 전치사 같은 것이다. 스와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자들의 영향으로 이삭을 신격화 했던 것으로 보이다. 소년이 제물로 희생되려는 순간 풀려나는 이 풍습은 오늘날 거행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볼 수 있는 나무기둥은 "오니예-바시라(oniye-basira)"로 일컬어진다. 이는 희생-기둥이라는 뜻이다.
  
소년이 묶여지게 될 '오니예-바시라'
 
오늘날에는 산 동물을 희생시키는 대신 박제된 동물을 사용한다. 이 동물 희생제와 소년을 나무에 묶는 풍습은 약 100 년 전 메이지(明治)시대의 사람들에게 야만적으로 여겨져서 현재 중단되었다. 그러나 축제는 아직도 거행된다. 소년의 풍습은 명치시대 초기까지 남아있었다. 에도시대의 학자이자 기행문 저술가인 마스미 스개(Masumi Sugae)는 그의 기행문에서 스와에서 그가 본 것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당시의 "온토사이" 축제와 희생될 운명의 소년과 그를 놓아줌 그리고 동물희생제에 대해서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의 기록들은 스와-타이샤 근방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온토사이 축제는 고대 이래로 계속 모리야(Moriya) 가문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모리야 가문은 "모리야노 카미(모리야의 신)"을 그들 조상의 신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모리야산(山)을 그들의 성소로 여긴다. 모리야 라는 이름은 "모리아(Moriah, Moriyyah-히; 창22:2)"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모리아 산은 오늘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Temple Mount)이다. 유대인들에게 모리아의 신(God of Moriah)은 곧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유일신을 의미한다. 

모리야 가문은 이 축제를 78 세대 동안 주최하여왔다.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필자에게 모리야의 신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은 기원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말해주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축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전통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일본으로 왔다는 강력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헤롯의 문 위에 있는 문양
 일본 왕실의 문장
  
일본 왕실의 문장은 16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모양의 둥근 표식이다. 현재는 국화처럼 보이지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대에는 해바라기에 가까왔다고 한다. 일본왕실의 이 문장은 매우 오래되었다. 헤롯의 문에 있는 것과 동일한 표식이 제 2 성전(聖殿)시대 예루살렘의 유물에서 발견되며 기원전의 아수르의 유물에서도 또한 발견된다.
 
b) 이스라엘과 비슷한 모자와 나팔
 
토킨(tokin)을 쓰고 나팔을 부는 
야마부시(yamabushi)
 성구함(phylactery)을 쓰고 소파(shofar)를 
부는 유대인
  
야마부시는 수행중인 종교인을 뜻한다. 오늘날 그들은 일본 불교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중국과 한국의 불교에는 이러한 관습이 없다. 야마부시의 관습은 7 세기 경 불교가 일본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야마부시는 이마에 토킨이라고 하는 조그만 검은 상자를 검은 끈으로 묶어서 쓴다. 이 모습은 유대인이 역시 검은색 상자인 성구함을 쓴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토킨의 크기도 유대인들의 성구함과 거의 같지만 모양이 둥글며 꽃모양을 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성구함은 대제사장 아론이 끈으로 "패"를 이마에 매었던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출28:36-38) 민속학에 의하면 그것의 크기는 4 센티미터이고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꽃모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는 야마부시가 쓰는 토킨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일본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적인 목적으로 검은 상자를 이마에 쓰는 관습이 있는 나라이다. 이 밖에도 야마부시는 큰 바다조개를 나팔로 사용한다. 이는 양뿔로 만든 쇼파나팔(shofar)을 부는 유대인의 모습과도 매우 흡사하다. 야마부시의 나팔 부는 방식과 소리는 쇼파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에는 양이 없었기 때문에 양뿔 대신 바다조개를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야마부시는 산을 종교적 수행을 쌓는 성스러운 장소로 여긴다. 이스라엘인들고 역시 산을 신성히 여겼다. 십계명의 율법이 주어진 곳은 시나이산이었다. 예루살렘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하러 산으로 올라가고는 하셨다. 변화사건(transfiguration)도 역시 산에서 일어났다.

일본에는 텡구(天狗)의 전설이 있는데, 그는 야마부시의 모습을 하고 산에서 살며 크고 두드러진 코와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졌었다. 옛날의 닌자는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동안 텡구의 초능력을 얻으러 산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그러면 텡구는 닌자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수한 후에 토라-노-마끼(tora-no-maki, 토라 두루마리)를 주었다. 이 토라의 두루마리는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매우 중요한 책으로 여겨졌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 '토라'라는 용어가 쓰인다. 유대인들의 토라(Torah) 두루마리가 일본의 유적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일본의 토라 두루마리는 유대인들의 토라에서 유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c) 일본에서 발견되는 이스라엘 언약궤와 복식

역대상 15 장에서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메고 들어가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역대상 15:25-28)
  
이스라엘의 언약궤
 일본의 "오미코시(Omikoshi)" 궤
  
필자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이것은 일본인들이 축제에서 '오미코시'를 메고 가는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도 흡사하단 말인가? 일본 '오미코시'의 모양은 언약궤와 비슷해 보인다. 일본사람들도 그 앞에서악기의 소리에 맞추어 춤추고 소리친다.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과 매우 유사하다." 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보통 두 개의 막개기를 사용하여 어깨로 운반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역대상15:15)

이스라엘의 언약궤는 두 개의 막대기로 꿰게 되어 있었다. (출25:10-15) 언약궤를 재현한 일부 모델들은 궤의 윗부분에 막대기를 꿰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성경은 막대기가 궤의 "네 발"에 붙어있는 네 개의 고리에 꿰어지도록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출25:12) 고로 막대기는 궤의 바닥부분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오미코시"와 비슷하다.

이스라엘의 언약궤는 윗부분에 금으로 된 두 개의 그룹(cherubim)의 상이 있었다. 그룹은 새와 같은 날개를 갖고 있는 천사들이다. 일본의 "오미코시"도 역시 꼭대기에 "호-오(Ho-oh)" 라는 금으로 된 새가 있다. 호-오는 상상의 새로서 천상의 존재로 생각되었다. 이스라엘의 언약궤는 전체가 금으로 덮였었다. 일본의 "오미코시"는 부분적으로, 때때로는 전체가 금으로 덮인다. "오미코시"의 크기도 이스라엘의 언약궤와 거의 동일하다. 일본의 "오미코시"는 고대 이스라엘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이스라엘의 다윗왕과 백성은 언약궤 앞에서 악기의 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일본인들도 역시 악기에 맞춰 오미코시 앞에서 노래하며 춤을 춘다. 몇 년 전, 필자는 "다윗 왕(King David)"이라는 미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는 다윗 왕의 일생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에서 다윗왕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예루살렘 배경을 일본으로 바꾸면 이 장면은 일본의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장면과 똑같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음악의 분위기도 역시 일본음악과 비슷하였다. 다윗왕의 춤도 일본의 전통춤과 비슷해 보였다.

쿄토에서 개최되는 신사(神祠) 축제인 "기온-진자(Gion-jinja)"에서는 사람들이 "오미코시"를 메고 강으로 들어가서 강을 건넌다. 필자는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한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본에는 내륙에 위치한 세토해(Sea of Seto)라는 바다에 섬이 있다. 이곳에서는 "오미코시"를 나르도록 선발된 사람들이 한 집에서 행사일 전에 일 주일 동안 합숙을 한다. 이는 부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오미코시"를 나르기 전날에는 바닷물에서 목욕재개를 하여 자신들을 정화시킨다. 이것도 역시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과 유사하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하고" (대상15:14)

성경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나서 행진이 끝났다고 말한다,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대상16:3) 이것 또한 축제가 끝난 후에 단 과자를 모두에게 주는 일본의 풍습과 비슷하다. 어린시절의 필자에게 이것은 큰 기쁨이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언약궤를 갖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세마포 겉옷을 입었다고 한다. (대상15:27) 제사장과 노래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어 성경에는 이 부분이 "흰 세마포 예복(robe of white linen)"으로 되어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대제사장은 색상이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일반 제사장은 단순한 흰색 리넨옷을 입었다. 제사장들은 성스러운 행사에서 흰 옷을 입었다. 일본의 사제들도 성스러운 행사에서는 흰 예복을 입는다.
 
옷술(fringes)이 달린 흰 예복을 입은 일본의 신도 사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神祠) 중 하나인 이세-징구(Ise-jingu)에서는 승려들 전원이 흰 예복을 입는다. 또한 많은 신사들의 경우, 특히 전통이 깊은 신사에서는 오미코시를 운반할 때 이스라엘에서 그랬던 것처럼 흰 옷을 입는다. 불교 승려들은 고급스러운 색깔있는 옷을 입지만 일본의 신도에서는 흰 색을 가장 성스러운 색으로 여긴다. 

일왕은 대관식을 마친 직후 신도의 신(神) 앞에 홀로 선다. 그는 흰 예복으로 온 몸을 덮는데 발만은 예외로 맨발이다. 이는 샌달을 벗고 맨발로 하나님 앞에 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출3:5, 수5:15) 일본에서 10 년 동안 거주했던 랍비,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본의 신도 승려들이 입는  리넨 예복은(linen robes)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흰 리넨 예복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일본 신도 승려의 예복은 모퉁이에 매달린 20-30 센티미터 정도의 끈들이 달려있다. 이 장식술은 고대 이스라엘의 예복에 달린 끈과 흡사하다. "입는 겉옷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 Thou shalt make thee fringes upon the four quarters of thy vesture, wherewith thou coverest thyself." (신22:12) 이 술은 그 옷을 입는 자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상징이었다. 신약성경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옷술을 크게 한다는 술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마23:5) 

혈루증을 앓던 한 여자가 예수님께로 와서 그의 겉옷의 옷술을 만지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다. (마 9:20; Charles B. Williams 譯, The New Testament: A Translation in the Language of the People)* 상상에 의존하여 고대 이스라엘 시대를 그린 삽화에서는 종종 옷에 술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예복에는 실제로 술이 붙어있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걸치는 탈릿(Tallt, 기도용 숄)에는 전통에 따라 모퉁이에 술이 붙어있다.
 
==== 역주:

* 개역한글 마태복음 9:20 에서 겉옷 "가" 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옷술을 의미하는 "kraspedon" 으로 마태복음 23:5 및 14:36, 막6:56, 눅8:44 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된다. 사람들이 병을 고치고자 예수님의 옷술을 특별히 만지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신도 승려들은 어깨에서 허벅다리까지 내려오는 직사각형의 천을 예복 위에 걸친다. 이는 다윗이 입었던 에봇과 같다: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대상15:27) 대제사장의 에봇은 보석이 달리고 색상이 있는 화려한 것이었으나 일반 제사장의 에봇은 단순한 흰색 아마천이었다. (삼상22:18) 랍비 토케이어는, 일본 신도 승려의 예복 위의 직사각형 천은 유대 제사장, 코헨(Kohen)의 에봇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고 기술하였다. 일본 신도 승려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에 관(cap; bonnet - KJV)을 쓰고 허리에 띠를 두른다. (출28:40) 일본 신도 승려들의 복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복장과 비슷하게 보인다.
 
d) 이스라엘 성막과 비슷한 일본의 신토

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막의 내부는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성소이고 다른 하나는 지성소이다. 일본의 신사도 역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일본 신사의 기능은 이스라엘의 성막과 유사하다. 일본인들은 성소 앞에서 기도를 하며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신도의 사제 및 특별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신사의 지성소에는 신도의 사제가 특별한 시기에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다. 이것도 이스라엘의 성막과 유사한 점이다. 

일본의 지성소는 대개 신사의 서쪽이나 북쪽 끝 부분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스라엘의 지성소는 성전의 서쪽 끝 부분에 있었다. 또한 신사의 지성소는 성소보다 높은 위치에 있하며 그 사이에는 계단이 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솔로몬의 성전의 지성소는 성소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폭이 약 2.7 미터 되는 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전형적인 신토 사원
  
일본 신사의 앞에는 "코마이누(komainu)"로 알려진 두개의 조각상이 출입로 양쪽에 있다. 이것은 섬기는 우상이 아니라 신사를 지키는 수호자이다. 이것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과 같다. 이스라엘의 성전과 솔로몬의 궁전에는 사자의 조각상이 있었다. (왕상7:36; 10:19) 일본에는 사자가 한 마리도 없었다. 하지만 사자의 상은 고대 이래로 일본의 신사에 있었다. 일본 신사의 사자 조각상은 중동지역에서 기원한다는 학자들의 설이 있다.
  
사원을 수호하는 코마이누(Komainu)
  
신사의 입구쪽에는 "테미즈야(temizuya)"가 있다. 참배자들이 손과 입을 씻기 위한 장소이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발까지 씻었다. 이러한 풍습도 유대의 회당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다. 고대의 성막과 이스라엘의 성전에도 입구 근처에 손과 발을 씻는 물두멍이 있었다.
 
신사의 앞쪽에는 "토리(torii)"라는 문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문은 중국과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고 일본에만 있다. "토리" 문은 두 개의 수직으로 선 기둥과 윗부분에 연결된 빗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토리의  원형은 두 수직기둥과 윗부분에 걸쳐지는 밧줄로 구성되어있었다. 신도의 사제가 문앞에서 허리를 숙여 예를 할 때 그는 각각의 기둥에 한 번씩 두 번 예를 표한다. "토리" 문은 원래 두 개의 기둥으로만 만들어졌었다.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문으로 사용되었던 두 기둥이 있었다. (왕상7:21)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하였던 아람어로 문을 뜻하는 말은 "타라(taraa)" 이다. 이 단어가 약간 변형되어 일본어의 "토리(torii)"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오래된 신사에서는 토리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필자는 이를 생각할 때마다 문의 두 기둥과 상인방에 출애굽의 전날 밤 양의 피가 칠해진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일본의 신도에는 "시메나와(shimenawa)"로 불리우는 밧줄이 그 밑부분에 흰 종이조각들이 달린 채로 성소를 둘러치고 있다. 시메나와 줄은 경계선으로서 세워진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경을 정하였다." (출19:12) 이 "지경"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밧줄이 사용되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의 시메나와 줄은 모세의 시대로부터 유래하는 풍습일 수도 있다. 줄을 따라 끼워진 흰 종이의 지그재그 패턴은 필자에게 시나이산의 천둥번개를 상기시킨다.
 

일본의 신사와 고대 이스라엘 성전간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 신사에서는 동물의 번제를 드리는 제단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신도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래한다면 왜 신도에는 동물 희생의 관습이 없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곧 필자는 신명기 12 장에서 해답을 발견하였다. 모세는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특정 장소를 제외한 다른 장소에서 희생제를 드리지 말 것을 명한다. (신12:10-14)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일본으로 왔다면 동물 희생제를 드리도록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쿄토의 마츠오 대신사 (Matsuo-taisya) 에서와 같이 문이 동쪽에 그리고 지성소가 서쪽에 위치하도록 지어진다. 그 밖의 경우에는 문과 지성소가 각각 남, 북쪽에 위치하도록 지어진다. 고대 이스라엘의 장막은 문이 동쪽에, 그리고 지성소가 서쪽에 가도록 세워졌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으로부터 온다는 믿음때문이었다. 
신사는 예외 없이 나무로 건축된다. 이스라엘 성전의 상당 부분이 나무로 지어졌다. 이스라엘인들은 성전의 일부에 돌을 사용하였으나, 벽, 마루, 천장
초록색 배경은 하나님 나라의 계절 대표색깔 입니다

Jay Johnston,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