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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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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Jul 20, 2008 08:07 PM 기타 에서

'종교 순례' 떠나는 대통합민주신당 전 대표 오충일 목사 파워인터뷰 
 
오충일 목사를 만났다.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으로 19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며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봉오리를 맺게 했던 주역으로 지난해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를 맡아 대선을 진두지휘했던 그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이렇게 크게 져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을 만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500만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를 당했다. 

정 후보의 대패는 사실상 정 후보 개인의 패배만이 아닌, 소위 민주화운동세력의 참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충일 목사, 백낙청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시민사회세력의 완전한 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0년만에 보수세력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은 민주화시대에서 실용주의 미래세력의 시대를 열었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그와 함께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인명진 목사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으로 보수세력의 집권에 크게 기여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뉴스파워가 오충일 목사를 만나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는 이빨 치료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전화를 했을 때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2월 14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장장 3시간 동안 광화문 신문로 2가 서울역사박물관 뒷골목길 막다른 끝에 있는 오 목사의 3층 집 거실에서 진행됐다. 

거실은 온통 지인들이 가져다 준 물건들로 가득했다. 누구는 그림을 떼어다 달아 주었고, 누구는 벽시계를 걸어주었다. 또 태백 광부들로 구성된 진폐증협회에서는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며 직접 탁자를 만들어 갖다줬다. 또 한명숙 총리 전 남편인 성공회대 박성준 교수가 주었다는 원두가는 기계로 오 목사는 직접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오 목사는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얻어왔다는 수수하고 낡은 철제 십자가를 손에 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 목사는 인터뷰에서 “새정치국민운동을 펴기 위해 정치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6월 항쟁 주역들의 퇴장에 대해 “정치에 입문을 해야 퇴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은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재야의 원로로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민주세력으로 분열을 통합해야 한다는 대전제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정치를 한다면 재야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목사는 앞으로 “종교순례를 할 것”이라고 말해 정치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 목사는 “인종문제는 종교문제다. 종교간 서로 이해하면 분쟁은 줄어든다”고 종교순례의 취지를 밝혔다. 

오 목사는 "비오는 날은 집에서 잠을 안 자고, 옥상에 있는 천막에서 잔다“고 특이한 취미를 소개하고 ”제주도에 가도 수행원이 호텔에서 자고 나는 윗오름세에 가서 자. 그것이 나의 취미“라고 말했다. 

오 목사는 특히 자신의 독특한 새벽묵상을 소개했다. " 나는 새벽 3시나 5시에 일어나 거실에서 이생강의 대금산조를 들으면서 춤을 춘다. 티벳 승려의 명상곡을 들으며 방과 거실을 걸어다니며 춤을 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생강의 대금산조를 틀어주며 춤사위를 펼쳐 보였다. 

오 목사는 목사의 성직을 소중하게 여겼다. “나는 교회의 성직이 있다. 교회가 더 우월하다고 하지 않지만 나는 대학 때부터 이것을 준비해왔고 교회가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내게 준 거”라고 말하고 “하고나서 속된 직업이라면 버리겠지만 그런데 이것은 여전히 성직이더라”며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혔다. 

오 목사는 “정치가 간접적 성직이라면 예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적 성직”이라고 말하고 “성직자는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직분이고 정치는 백성이 먹고 입고하는 것을 다루는 성직이다.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목사로 이미 30년 동안 한 전공”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정치에 참여하면 다른 사람 전공을 뺏는거야.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30년 전부터 공부하고 준비했겠지”라며 웃으며 말했다. 

오 목사는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민생문제를 소홀히 한 것이 최대의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는 조중동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목사의 인터뷰는 준비해간 질문지보다 그가 이야기한 내용 중심으로 그대로 정리했다. 오 목사의 인터뷰 다음으로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인명진 목사와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목사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15년 전부터 순례를 계획했는데 못가다가 4년 전 준비해서 출발하려고 했다. 그 때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때문에 못 갔고 최근에는 대통합신당 대표하느라 못갔다. 지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정치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말자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다르다.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하는 가운데 정치권 러브콜을 거부하시다 결국은 정치라는 배를 타서 선장역할을 했는데? 배를 탄 것이 아니라 범민주세력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든 것이다. 


 

▲ 오충일 목사는 새벽에 불을 켜지 않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의 독특한 묵상법이다. ©뉴스파워 이인창 

범민주세력이 위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가요? 
작년 6월에 미래구상을 할 때는 민주개혁통합미래세력이 중심이 돼서 역사가 진보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 당시 김대중 정부를 만들었던 민주당은 분열돼 있고 6~ 7월에 열린우리당이 여러차례 분열이 되고, 한나라당은 그 때 이미 박근혜 이명박이 고공행진하고 있어 민주개혁세력이 지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원이 아니라 참여까지 하게 됐다. 이제 시민사회세력이 나와서 신당의 재창당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분열돼 나온 사람들까지 통합하기 위해 시민사회 절반과 구 정치권 절반으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했다. 원내총무는 자동직 최고위원이 되고, 당 대표는 내가 맡은 구도로 해서 단순한 통합을 넘어 새로운 통합을 시도했다. 새정치국민운동본부도 안에 두고. 그러나 바로 대선으로 들어가게 돼서 새정치국민운동을 펴보지 못했다. 

그랬다면 새정치국민운동을 펴셔야 할 텐데요? 
그런데 바로 총선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쉽다. 이번 총선까지는 과거형태의 정치만 남게 됐다. 

지난해 성공회 대성당의 87년 6월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 모시고 행사를 하셨죠? 지난 17대 대선이후 87년 6월 항쟁의 주역 재야의 원로세력이 백낙청 교수 오 목사님이 참여하여 대선에 참패하게 됨으로써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퇴장이야 정치에 입문을 해야 나오는 것이다. 이번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재야의 원로로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민주세력으로 분열을 통합해야 한다는 대전제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정치를 한다면 재야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민주정치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모든 사회권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6월 항쟁에 참여했다. 겨우 직선제 얻었는데 양김이 단일화를 못한 것이 가장 큰 패배라고 생각하고 그 때도 진 것이었다. 이번의 민주세력의 패배보다 더 큰 패배였다. 양김이 독재정권의 동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앞에서 양보하지 않아 깨졌다. 그 이후 민주세력이 둘로 나눠지게 됐고 그 세력은 다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뉘었고 십 수년 계속됐다. 이것이 통합되지 않아 재야세력까지 분열된 것이다. 

집행위원장으로 가장 큰 과오는 국민의 힘으로 얻은 6 29선언이라는 항복문서를 받았는데 국민의 힘이 모였던 국본이 정치를 모으지 못하고 양김에게 국민이 준 권력을 넘긴 것이다. 양김이 통합을 이루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믿었는데 안되더라. 그게 권력욕이구나 싶었다. 난 김영삼 씨에게 양보를 문익환 목사는 김대중 씨에게 양보를 권했는데도 안되더라. 

국민들이 민주세력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전에는 북에 가는 게 큰일이었으나 지금은 천지개벽인 것이다. 복지 분야에도 큰 성장이 있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특히 그렇다. 또 차상위 계층이 버려지지 않게 한 노무현 정권의 역할도 크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인권이 많이 좋아졌다. 남북교류도 활발하게 됐다. 남북가족상봉, 금강산 관광은 예전에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섰다. 국정원 의문사진상규모를 하는 것 등. 

경제성장은 계속 성장했다. 조중동 선전으로 그렇게 비춰지지 않은 것이다. 총량은 그러하나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불러온 것이다. 부자는 종부세 같은 제도 때문에 싫고 없는 사람은 부자들 위화감 때문에 싫은 거야. 지금은 있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세상이 됐다. 그것이 직장 결혼 등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기에 부모들은 미치는 거야.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것이다. 

공산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 6월에 제네바에서 social development 84개국 정상 및 경제 장관과 NGO가 참석해서 확인했다. 


요즘에는 당사에 안 나가셔서 여유가 있으시겠네요? 

아니야. 나 지금 바빠요. 종교 순례를 하려고 하는데 걸어갈 때 은혜가 많아. Walking Meditation이야. 예전에 3박 4일 동안 제주도를 천막을 들고 낮이고 밤이고 가다가 쓰러질만하면 아무 데서나 잤다. 

저 차(로디우스, 뒷좌석을 떼냈다)는 노숙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샀다. 민중이 되려도 안되는 이유가 있어.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데, 좋은 오리털 침낭을 300개를 얻었다. 온정주의가 있어 갖다 주기는 하더라. 그런데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 

98년 실업극복운동 대표를 당대표 전까지 했었다. 처음엔 싱가포르처럼 노숙자를 싹 없애려고 했어. 그런데 이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일을 하겠다고 하더라. 그중 10~20%는 이미 갔더라. 오래 방치하면 그렇게 되겠더라고. 일자리만 주면 50~60%는 건지겠더라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거야. 

실업상담의 마지막이 노숙자더라. 보통 새벽 2~3시쯤 찾아간다. 초저녁에는 술 먹고 기운이 세서……. “춥지. 내가 오리털 있는데 줄까?”하면, 그러면 일어나서 같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어떤 사람은 오랜만에 “형님 잘 만났네야” 하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얘기한다. 차를 사자마자 의자를 전부 떼어내고 뒤에서 여러 사람씩 얘기할 수 있더라. 한 겨울 재밌게 잘 보냈네. 

노숙자를 난폭한 사람들로 모는 언론은 잘못하는 거야. 노숙자를 만난 나름의 결론이 있는데 첫째는 착하다. 나쁘면 담는 거야. 둘째는 절대자유를 원하더라. 간섭을 싫어해. 노숙센터가 있어도 안 들어가더라. 한 사람은 노동일로 평생 번 돈을 아주 먼 친척 암투병에 준 사람도 있었다. 별의별 사람 다 만났다. 

종교순례 일정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습니까? 
최초 생각했던 것은 10년 계획이었다. 지구촌의 분쟁의 절반이 인종문제다. 인종문제는 종교문제다. 종교간 서로 이해하면 분쟁은 줄어든다. 그것은 서로 몰라서 그러는 거야. 5대 종교 외에 아주 작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의 종교심을 만나야 그 사람을 아는 거야. 그 사람 마음에 있는 진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장에 가서 어디를 가서 사진 찍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겁니다. 르포도 생각했다. 

신앙의 형태가 어떠하든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서 화해하는데 정치 문화 경제적 접근이 아니라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독교 선교도 그럴 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럴 때 오해가 없이 평화에 기여하게 된다. 이제 나이가 있어 10년은 길다. 누가 한다면 내가 할 이유는 없다.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이라는 인식론을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 성당을 관광으로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면죄부 판매로 지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거야. 예수님이 볼 때는 헤롯의 예수살렘 성전을 보면 볼 때마다 슬픈 거야 그것이 속이는 거고. 지나간 세월에 묻혀 있는 민중의 피흘림이 산티아고 길을 걷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거야. 지구촌은 찬란하고 거룩하지만 축적된 인간의 죄를 생각하면 걸음을 뗄 수가 없는 거야.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으스스 하는 것을 느끼기도 해. 최근 언제부터인가 환상을 가끔 봐. 앉아있다가도 앞이 열리는 데, 정말 아름다워. 

나는 비오는 날은 집에서 안 자. 옥상에 있는 천막에서 자요. 제주도에 가도 수행원이 호텔에서 자고 나는 윗오름세에 가서 잔다. 그것이 나의 취미이다. 나는 지방을 좋아해요. 


목사님의 묵상 방법이 있으시다면요? 
나는 새벽 3시나 5시에 일어나 거실에서 이생강의 대금 산조를 들으면서 춤을 춘다. 티벳 승려의 명상곡을 들으며 방과 거실을 걸어 다니면서 묵상하면서 춤을 춘다. (그러면서 이생강의 대금 산조를 틀어주며 춤사위를 펼쳐보였다) 나는 우주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몸 안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에 평안을 담고 있다. 내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야. 어떤 때는 음악을 끄고 추기도 해. 

목회도 하셨죠? 
군산에서 10년을 했다. 

1987년 김영삼 씨가 찾아와 꽤 구체적인 자리를(청년당, 지역구, 전국구 같은) 제안을 했었다. 90년 3당 합당으로 넘어가 야당이 평민당 하나 남았는데 정확히 전라도 당이었다. 함석헌 같은 분이 전국당이 되도록 돕자 하더라. 그래서 평민당 해체하고 신민주연합당 할 때 사무총장을 했어. 그래도 정치는 안했었다. 또 신당 재창당의 주체라고 정치를 하면 전국구로 0순위라고 하더라. 

노무현 대통령 국정지표나 마인드는 좋았다. 그러나 2000년 6월 제네바에 가서 실업문제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갔는데 한마디도 못하고 왔다. 보수적인 세계은행 발표가 10억 200만 명이 한 달에 1달러 미만으로 살더라. 가서 정신이 번쩍 나면서 우리 실업은 문제도 아니구나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 쇼크를 크게 받았다. 

회갑 때 성지순례를 다녀오라고 교회에서 250만원과 한 달 휴가를 줬다. 그래서 실업문제 해결이 유럽에 있다고 해서 거기에 참석하고 성지는 일주일정도 가서 다녀왔다고 하려고 했다. 또 영국 프랑스도 살펴봤는데 그들은 수년 동안 정리해고를 계획하더라. 그리고 국민이 받아들이더라. 프랑스의 경우는 200개 정도의 직업학교가 있어 새로운 직업을 위한 교육을 하더라. 여러 대안이 있다고 정치나 경제 공부하는 사람들이 세미나를 열겠다고 했다. 거기서 답이 나오는 줄 알고 계속 머물렀는데 그 와중에 여비가 떨어진거야. 아내보고 순례시켜 주겠다고 카드 들고 날아오라고 했어. 그 때 이탈리아까지만 가고 이스라엘은 못 간 채 돌아왔다. 아직 못 갔다. 


국정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군 과거사정리를 하셨지요? 국민들은 미래정리 대안을 하지 못하고 과거에 너무 매달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과거 청산은 프랑스 독일 같은 경우도 했다. 그것은 하게 돼 있는 것이다. 국가가 잘 못한 4.3항쟁은 정리해야 한다. 내가 대상자라면 그것이 과거이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풀 수 없었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을 했었고 이후에는 군사정부였고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권과 함께했고 김대중 정부는 유신잔당 김종필과 했기 때문에 못했다. 노무현 정부만 그것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국가 지위는 올라갔다. 일본에서 사회당 관계자를 만났을 때 일본은 멀었다며 한국의 수준을 탄복했다. 

실상 노무현 정권과 국정원 의문사진상위원회는 무관하다. 8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했지만 실은 국정원의 민변 출신의 고영구 변호사(좋은 사람이라고 함) 김만복 당시 기조실장과 함께 준비를 했다. 국정원은 일을 하기 위해 국민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것을 털고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자고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들끼리 하면 누가 믿어 주겠어? 그래서 시민사회에 대고 호소 한거야. 그래서 종교별, 인권단체, 학술단체가 모여 만들었다. 이미 준비기간이 4월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준비해 놓고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 한 3년 반 재밌게 열심히 했다. 인제 한다는 것이 창피한 것이지 과거에 집착했다는 것은 조중동의 논리다. 자꾸 듣다보니 쇠뇌된 것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미래지향적이었다. 통일문제와 전작권 환수 등은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위원회, 고령화대책, 차상위계층대책 등 이것은 미래지향적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소리도 안 나게 한 노무현 정부의 역할은 정치개혁이었다. 지금 정치는 옛날에 비하면 깨끗해졌다. 내가 대표임에도 돈 몇 백만 원도 맘대로 쓸 수도 없더라. 지금은 한 푼도 맘대로 못 해.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일자리 250만개 만든다고 해서 반가워서 당선자실에 갔다. 그런데 신계륜 의원에게 구체적인 게 뭔지 물어봤더니 구호만 있더라. 

당선자를 축하하기 위해 원로를 초청한 자리에서 진폐증환자협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거실에 있는 고목 탁자를 굳이 사양을 해도 관심 쏟아줘서 고맙다고 갖다 주더라고. ("시계 그림 컴퓨터까지 지인들이 갖다 놓더라"며 웃는다). 

대통령에게 ‘알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한 2년 있다가 진폐협회에 물어봤더니 아무소식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화가 나서 청와대 어느 수석보고 뭐라고 했더니 아무도 기억하는 놈이 없더라구. 대통령 잠꼬대도 기록해야 하는 것인데. 그 때 느낀 것이 인권, 정의, 자유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말은 있었는데 민심의 얘기는 안들은 거야. 숭례문 불 지른 사람에게 반대를 하더라도 대응을 했다면 저렇지 않았을 거야. 

내가 열린 우리당 갔더니 초선의원이 108명이더라. 민생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우상호 의원에게 말했더니 아니란다. “6개월 동안 토론했어요. 하더라. 참 현장하고 동떨어져 있었어. 요즘 시민운동은 시민하고는 멀어. 시민단체가 소리치면 효순이 미순이처럼 몇 천 명 나왔어. 이제 몇 백 명 나오는 정도야.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더라. 자기도 IMF 처리도 팔아서 갚는 것이 아니라 벌어서 갚아야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의 부채를 이어받은 거야. 그래서 몇 년 전에 밝히라고 했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해서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4년 전에 빠져나갈 기회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해 185명 원로들과 4당 4경제단체장이 함께해서 희망포럼에서 아일랜드나 스웨덴식 협의를 하자고 내가 제안을 했다.(당시 한겨레신문 희망포럼 기사를 찾아보라고 알려준다) 

현재 경제 어려움은 “참여 정부로만으로 막기는 어려우니 아일랜드나 스웨덴처럼 사회협약을 하자. 노사정만으로는 안 됩니다.”라고 했었다. “청와대, 군인, 공무원 들은 모른다. 인력시장에 나가는 사람, 자영업자, 월급쟁이들은 힘들다”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오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안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라. 몇 달 후 연기금을 가지고 투자한다고 해서 뭇매를 맞기만 했잖아. 당시 한다고 했으면 되는 거였어. 정부가 하면 안 믿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해서 갖다 주면 되는 건데 전부 뒤집어 쓴 것이다. 일자리와 민생경제만 잘했으면 성공했을 텐데....... 

노무현 정부의 또 실수한 건 영원한 숙제 부동산문제를 해결 못 한거야. 한강을 건너자고 하는 건데 다 못 건너고 한강에 빠진 거지. 

정치의 요체는 배부르고 등 따수우면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거야. 내가 화훼단지 가보니까 사람이 없더라. 자유와 인권도 좋지만 그 부분에서 실수한 것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하는 일에 발목을 사사건건 잡았던 것이 유감이다. 조중동은, 잘한 것은 세계 경제 11위 같은 사례는 톱(뉴스)이여야 하는데 작게 다루고, 잘못한 것은 크게 다루었다. 집권 기간 내내 그렇게 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도 계속 듣다보면 쇠뇌 되는 거야. 신당 창당할 때 보니까 열린우리당도 조중동 논리로 말하는 것을 보며 지적한 적도 있다. 

언젠가 조용기 목사를 만나 두 가지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세계신앙인대회를 하자고 했다.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정신세계의 올림픽을 1회를 한국에서 하자고 했다. 어떤 형태의 신앙이든 존중하는데서 출발하자. 우리는 다종교가 있고 좋은 시설을 이용하기에 우리나라가 좋다. 70만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을 봉사단으로 일치시키자고 했다. 

다른 하나는 당회장은 그만둬도 신문은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노동일보를 해봤지만 지금 정론지가 없다. 제대로 인풋(input)해야 아웃풋(output)이 되고 듣는 대로 생각이 된다, 국민도 올바른 것을 들어야 올바른 판단을 한다. 이명박 정부 당선에 언론의 오도도 작용한 것이 있다. 현실도 쓰리고 아프니까 먹혀드는 거야. 

한번은 택시를 타고 가다 “이명박 후보가 흠이 많은가 보데요” 라고 하니까 택시기사가 “그러면 어떻습니까? 경제 살리면 됩니다. 하더라.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금송아지 달라고 했던 백성들처럼, 지금 우리 국민도 인권도 정의도 없어. 완전히 금송아지 달라고 하는 것과 같아. 그런 요구에 대고 하나님은 이명박을 준거야. “니들이 한번 받아봐라” 한 거야. 

이제 한번 지켜보자.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있을 거야. 성직자인 나도, 착한 사모님도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세상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구. 난 그래도 요즘 전차나 공짜로 타지(웃음). 

말세는 말세야. 재물과 하나님 중 하나를 섬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로에 서있어. 언론도 마찬가지더라. 내가 노동일보 사장하는데 광고는 기업에서 나오잖아. 

‘퇴임 후에 뭐 할 거냐’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도 언론 운동하겠다고 하더라. 국민일보는 자체 돈으로 하니까 구독료를 낸다고. 처음엔 국민일보 나오는 것 반대했는데 그래도 교회다. 올바른 신앙양심으로 하면 된다. 

작년 평화포럼에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특히 성직자로서 현장정치에 참여하셨는데, 어떤 생각이신지요? 

성서도 정치적이다. 다윗이 왕이면서 하나님을 왕이라고 개념을 쓴 것도 정치적이다. 예수님도 왕이라고 쓰면서 너희가 생각하는 왕이 아니라고 묵시적으로 말씀하셨다. 

가톨릭 천년에서 교황이 왕을 세웠다. 중세 천년이 암흑이라고 하지만 당시 마을이 생기면 교회가 먼저 생기고 교회 앞에 광장이 있고 마을이 만들어졌다. 모든 축제 결혼도 광장에 서 했다. 결혼신고, 출생신고, 농기구개발, 학문연구, 연금술 등 교회가 전쟁 빼고 다 했었다. 나중에는 전쟁도 했었다. 요즘 교회는 예배보고 노는 거야. 이런 무기력함이 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정치와 교회를 운운하는 게 난센스다. 교회가 정치를 다 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뜻한다. 통치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보다 공적이고 거룩한 것이다. 정치권력 역시 훨씬 성역이다. 정치가 잘못되면 세 살짜리 영혼도 잘못 된다. 

그래서 성직자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정치가 성역에 마땅하다면 누구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를 통해 치부하고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교회가 놔둔다면 그것이 죄이다. 정치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죄다. 

크리스천 청년들을 만나면 신앙고백 제대로 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자신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정치부터 하라고 한다. 그대로 살려고 하면 개인적 삶을 살지 말고 사회적 삶을 살라고 한다. 사회적 삶에 성직도 있지만 먼저 정치를 하라고 권한다. 제 경우는 김영삼 정부 때에 정치하자고 김대중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하려고 하면 정치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교회의 성직이 있다. 교회가 더 우월하다고 하지 않지만 나는 대학 때부터 이것을 준비해왔고 교회가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내게 준 거야. 하고나서 속된 직업이라면 버리겠지만 그런데 이것은 여전히 성직이더라. 

정치가 간접적 성직이라면 예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적 성직이잖아. 성직자는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직분이고 정치는 백성이 먹고 입고하는 것을 다루는 성직이다.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목사로 이미 30년 동안 한 전공이야. 내가 정치에 참여하면 다른 사람 전공을 뺏는 거야.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30년 전부터 공부하고 준비했겠지.(웃음) 

MBC 뉴스 후에서 목회자 세금문제를 다뤘습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의 오랜 전통은 교회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데우(웃음) 상속도 하지 않고 수도원과 교회에 갖다 바쳤어. 그만큼 교회가 중요하고 모든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난한자를 돌보고 제네바 대학이나 미국의 좋은 대학들도 교회가 만들었어. 교회가 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일을 위해 돈을 받았었어. 

그런데 지금 와서는 교회가 직장인이 됐다. 신학적으로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바쳐진 것이다. 성직자는 내 것이랄 게 없다. 

독일의 경우 종교세를 내고 그것으로 목사들 봉급을 준다. 목사에게 세금을 내라는 게 아니다. 그만큼 독일사회에서 교회는 국민의 세금을 통해서 보호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나는 세금을 내자고 해도 안내자고 해도 슬프다.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인식되는가? 뭘 했기에 이렇게 됐는가? 이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특히 ‘성직자가 사회를 위해서 다 내놓고 주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뭐로 주냐 그것은 교회가 주는 것이다’라고 인식돼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개탄하는 것은 교회나 성직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12지파 중 레위지파는 세금을 내지 않고 11지파가 레위지파를 먹여 살리게 됐어. 레위는 대신 전심으로 봉사하고 예배하도록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받아야 하고 교인들이 먹
초록색 배경은 하나님 나라의 계절 대표색깔 입니다

Jay Johnston, Christianity